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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연재마당/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by 최진규

2편 -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되는 표지 디자인

앞선 글에서 “당신은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표지들을 올렸는데요. 사실 저는 책에서 표지 디자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본문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문을 표지보다 더 오래 보니까요. 그런데 본문 디자인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고 표지 디자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내기가 더 수월할 것 같아서요. 

책 표지는 이른바 얼굴이죠. 입구의 간판 역할이기도 하고요. 저는 독서 경험이 어떤 한 공간을 방문하여 거닐거나 들여다보거나 헤매는 등의 육체적인 경험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테면 이런 비약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데미안』 독서를, 헤르만 헤세가 가꾼 ‘데미안’이라는 농장에 들어선다고 여기는 겁니다. 

책과 농장을 비유한 것이 뜬금없을지 모르는데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책의 구조가 그와 비슷해요. 간판이 있고, 짧은 진입로를 한 번 더 지나면, 이내 밭의 경계가 있을 테고, 안으로 훌쩍 들어서면 농작물들이 이랑을 따라 펼쳐져 있겠지요. 그 하나하나는 마치 단어들처럼 제각각의 뜻을 혹은 표정을 하고 있을 테고요. 자기가 농작물을 살피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더 상상해볼까요. 밭에서 흐름을 만드는 것은 이랑이죠. 이랑은 동선을 좌우하고요. 몸은 이랑을 따라 농작물 앞에 멈췄다 가다를 반복하며 리듬을 만들며 경작을 합니다. 잎사귀를 살피고 줄기를 일으켜주고 열매를 매만지며 나아가는 운동을 하죠. 책의 페이지 안에서 행을 따라 단어들을 넘어가는 일과 분명 닮은 데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책의 표지란 농장의 간판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매우 근본적으로는 책 표지 디자인은 책 제목이 적혀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농장의 몸은 당연히 밭이고, 정체성도 밭에 있고, 무수한 의미로 가꾸어지고 있는 곳도 밭이니까요. 그런데 표지에는 제목만 써 있으면 안 되고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책이 소비재의 운명이기에 시장에서 어필하기 위해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표지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억에 남겨지는 책. 저는 책 표지의 욕망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독자로서도 그런 기대를 선사하는 책이 반갑습니다. 그럼 어떤 디자인이 기억에 각인되는 디자인이냐. 이 물음에는 공식이나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무엇에 반응하느냐는 천차만별로 다르죠. 정말 아무 장식 없이 제목만 딱 써 있는 디자인이 충격적으로 각인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다성적으로 연출된 표지가 책 내용 이상의 감동으로 마음에 남을 수도 있고요. 경우의 수는 너무 많습니다.




- 제목만(?) 적어도 충분히 인상적일 수 있어요(이 표지들이 엄밀히 제목'만'은 아니지만요) -

 

그런데 이렇게 천차만별이기에, 모두가 제 나름의 기호가 있기에, 이들 전부를 상대로 하여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접근법이랄까, 방법론이랄까 그런 게 필요해집니다. 천차만별을 상대로 무작정 디자인을 한다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기호만을 좇아 디자인을 한다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할 거예요. 일단 설득력이 떨어질 테고, 설득력이 떨어지면 당장 발주자나 동료들의 컨폼을 받아내기도 힘들겠지요. 

제가 표지 디자인들을 보게 될 때 나름 따져보는 몇 가지 관점이 있는데 이제부터는 그것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꼭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런 관점들은 마찬가지인 듯해요. 


1. ‘한마디’로 설명되는 표지인가

저는 장식이 많은 디자인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게 되더라고요(이건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선호예요). 물론 책 표지에서 아름다운 장식을 볼 때 감동하기도 하고, 조금 더 거창하게 보면, 산업화 시대가 휩쓸어버린 수공예 장식의 정신이 지금의 새로운 표현으로 되살아난 듯한 작품을 책 표지에서 만날 때도 있죠. 그런데 그런 차원 이전에, 그저 ‘저쪽 구석이 좀 허전하지 않아요?’ ‘저기는 아깝게 왜 비워 놨을까?’ 같은 반문 탓에 무의미하게 장식을 넣는 건 지양하는 편이 나은 듯해요. 꼭 허전하지 않게 채워야 하고, 꼭 다채롭고 화려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저는 그보다는 각인될 만한 특징이 한 가지씩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여겨요. 그 특징이라는 것은 두 가지, 세 가지보다는 단 한 가지나 낫다고 보고요. 주목할 게 많아지면 조화가 깨지기 쉽고 그러면 산만할 뿐이니까요. 이런 관점을 적용해서 책 표지들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어요. 아래 표지들을 한번 봐주세요. 





이제 표지들을 이렇게 한번 불러 봅니다. "베개 표지" "고래 표지" "사과 표지" "침대 표지" "엉덩이 표지" "수영모 표지" "손 표지" "포크 표지" "물감 표지" "착시 표지" "코트 표지"... 여기서 위의 표지 중에 어떤 표지를 일컫는지는 일일히 표시하시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지요. 맨 아래 두 개는, "모래시계 표지" "유령 표지"라고 부를 수도 있겠는데, 뭐든 상관없죠. 저는 표지를 이렇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편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접근법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표지 디자인을 통해 책을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시키기 혹은 책마다에 하나의 컨셉트를 새긴다고 생각하면 될 듯해요. 다성적인 연출이 요구되는 책도 분명 있겠지만 대개의 책에서는 이런 접근법이 좋지 않나 싶어요. 그 이유는 앞서 적었듯, 두뇌의 기억 용량이 있기 마련이고 그중에서 표지로 각인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 표현이 섞여 있기 보다는 단 하나의 인상을 남기는 편이 승부수가 될 만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책 표지를 볼 때 첫 번째 단계로 살펴보는 관점이에요. '한마디'로 할 수 있을 만큼 키워드가 명쾌한가. 그렇게 골라진 키워드는 과연 책과 잘 어울리는가. 이것에 일단 성공하면 더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표지이지요. 저는 대표적으로 아래의 표지가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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