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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출판사의 새 책/문학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정가 13,000원

 

노인요양병원 원장 노태맹 시인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

 

고통 없이, 순식간에, 남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남겨주지 않는 죽음을 우리는 ‘웰 다잉’이라고 부른다. 남은 우리의 삶과, 미지의 것으로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죽음을 마주하면서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고 잘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안고 가는 이유일 것이다.

철학하는 시인이자 의사인 저자가 늙고 병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던지는 질문과 성찰. 10년 넘게 노인요양병원 원장으로 일하며 700여 명의 노인들을 “죽음의 문까지 바래다 드”린 노태맹 시인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는 살과 피와 뼈를 지닌 몸으로서의 우리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통찰하는 ‘삶과 죽음의 거처(居處)를 찾는 존재론적인 탐구’서이다.

 

■ 추천사

죽음은 덮어버리고 추방하고 외면해야 할 질병의 치명적 결과일 뿐인가. 철학하는 시인이자 의사인 노태맹의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은 늙고 병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게 한다. 현대사회가 학습시키고 우리가 받아들여온 죽음에 대한 신경질적 거부는 우리 삶을 왜소하게 만들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깊이와 온기를 앗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끝내 알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나의 죽음’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내 삶의 의미망 안으로 들어오는 아픈 신비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와 공감과 연민을 통해 간신히 당도하는 선물 아닐까.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삶과 관계를 향한 윤리의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10년 넘게 노인요양병원 원장을 하며 700여 명의 노인들을 “죽음의 문까지 바래다 드”린 노태맹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는 살과 피와 뼈를 지닌 몸으로서의 우리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통찰하는 ‘삶과 죽음의 거처(居處)를 찾는 존재론적인 탐구’서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과 자본주의 산업으로서 이윤 추구라는 두 날개로 날고 있는 현대의학과 과학기술에 회의적인 눈길을 던지기도 하는 저자는 늙고 병들고 언젠가 죽을 운명에 놓인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며, 삶의 기술만큼 참다운 죽음의 기술과 잘 늙어가는 기술 또한 필요하다고. ‘죽음의 불평등한 분배’와 죽음의 ‘죽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굿바이, 잘 가자.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 김해자(시인)

 

■ 본문 중에서 

의대를 입학하고 15년이 지나서야 나는 의사가 될 수 있었고 이 글을 쓰는 현재, 노인요양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그 10여 년 동안 대략 계산컨대 700여 명의 사망진단서를 썼던 것 같다. 700여 명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의학적 죽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에도 나는 한 사람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을 보았고, 불과 한 시간 전에는 집에서 갑자기 사망하여 장례식장으로 실려 온 한 노인의 시신을 검안하고 왔다.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죽음이 더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음의 전문가는 아니다. 물론 죽음의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 가운데 죽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았던, 그리고 앞으로 알 수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죽음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죽음을 탐구하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나라는 주체 바깥의 이름 모를 타인에 대한 탐구이고, 잘 늙기 위한 기술에 대한 탐구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정신의 영웅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그들이 죽음과 마주한 기록들을 언젠가 쓰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철학적인 논의들을 되도록 절제하기로 하였다. 다만 노인병원에서 마주한 죽음의 얼굴들을 묘사하기로만 하였다. 노인병원에서 겪는 늙음과 죽음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곳에서 경험한 모습은 우리 시대 늙음과 죽음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잘 늙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늙는 것도 배워야 한다.

이 글들이 늙어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들이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슬픈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나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 저자 소개

노태맹

경북 성주에 있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유리에 가서 불탄다』, 『푸른 염소를 부르다』, 『벽암록을 불태우다』가 있다.

 

■ 차례

머리말

 

죽음의 기술(ars moriendi)

죽음을 마주보는 어려움

살아있는 이의 얼굴과 죽은 이의 얼굴

집중치료실 201호

백일홍 붉은 꽃을 머리에 이고

죽어가는 자의 고독

가장 행복한 날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이팝나무, 죽음을 바라보는 환한 시선처럼

말해보라, 경계가 어디인가?

자귀나무 꽃 경전을 읽다

이 낯선 不在를 어찌할 것인가?

천 개의 바람처럼

치매, 영혼의 정전(停電)?

‘눈이 부시게’, 그리하여 ‘나무와 같이’

살아있는, 죽은 자들

마치 굿바이 하는 것처럼

죽음의 불평등한 분배

노동자의 유령들

영원히 살고 싶으신가요?

죽음과 이데올로기

노동으로부터 해방과 노인 공동체

죽음이라는 산업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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